Voronoi

우리가 남이가?

낯설지 않은 말이다. 한국사회의 밑바닥에서 참 끈질기게 마르지 않고 흐르는 그 말이다.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공직에 있으면 강단이 있어야 한다. A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억울한 사람 목숨 살리는 일이 아니면 규정은 꼭 지키는 것이 좋다. 공적인 문서를 다루고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 사적인 관계에 대한 미련으로 자신이 맡은 일을 공적으로 처리하지 못한다면 바로 그 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어떤 사람은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을 이렇게 구분하는 것 같다. 출근해서 일터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공적인 일로 집으로 돌아가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사적인 일로 구분한다. 어처구니 없는 구분법이다. 그런데 문제는 한술 더 떠서 세부적으로 들여다 보면 “우리가 남이가”란 생각이 공적인 일에 개입되면서 궁극적으로는 공적인 관계에 대한 형성을 하지 못하고 공적인 일터에서 사적인 감정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우를 범하고 결국 일을 그르친다. 일터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공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음 때문일 까? 내 자신에 대한 추상같은 명령은 찾아 볼 수도 없고 젊음이라는 말이 아까울 정도가 된다면 이미 희망은 저 멀리 가버리고 절망만 웅크리고 앉아 있다. 가르쳐서 되는 사람이 있고 가르쳐도 안되는 사람이 있다. 가르쳐도 안되는 사람은 가르치지 말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시간이 있으면 가르쳐서 될 사람을 찾아 그 일을 하는 것이 세상에 이롭다.

복잡해 보이는 구조에도 어떤 패턴이 있다. 보이는 것을 이해하려는 것 보다는 속에 숨어 있는 원리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구조의 본질을 이해하는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