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 가면 세팍타크로라는 운동경기를 볼 수가 있다. 15세기 말레이시아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세팍타크로라는 단어는 말레이어와 태국어가 합쳐져서 만들어 졌다고 한다. 이 경기는 발로 공을 차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지켜보면 매우 격렬한 움직임을 동반하게 된다.
살다보면 별의별 일이 다 있다. 나이가 들면서 대부분의 일은 예측가능한 일이 되기도 한다. 누가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경험적으로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예지자의 수준에 이른 사람이 너의 머리가 유리알 같다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한편으로 세상사 모든일에 대해서 예측 가능하게 움직이는 훌륭한 분들도 주위에 있다. 그런데 그런분들 옆에서 자신이 예지자가 된 줄 착각하는 망종((亡種))도 있다.
선진국일 수록 모든 사회적 시스템은 예측가능하게 설계되고 또 그렇게 작동되고 있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시스템을 믿고 시스템의 한 일원으로서 살고 그 시스템의 많은 부분에 기여하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용이란 매우 중요한데 이 신용이 선진국에서는 간단히 설명하면 재산이 많은 사람 그리고 연봉이 많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 개인이 어떤 은행과 오랜기간동안 정상적으로 거래를 하고 상도덕을 지켰다면 은행은 이 개인을 신용이 있는 사람으로 인식을 한다. 그래서 가능한 이렇게 오랜 기간을 거래해 온 사람에게 자금을 대여해주고 알선해 준다. 그러나 후진국의 경우에는 이러한 기재가 작동하지 않는다. 권력을 등에 업으면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고 재산이 많아서 돈을 빌리고 그리고 아주 나쁜 경우는 정책이라는 미명아래 아무련 신용이 없는 사람에게 돈을 마구 빌려준다. 이때 반대로 누군가에게는 오랜 기간동안 그가 쌓아온 신용을 무시한채 대여를 해주지 않는다. 이는 모두에게 불행한 것이다. 아무도 그런 사회적 시스템에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려고 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자연에는 예측 가능한 형태의 구조가 매우 많다. 관찰을 통해서 구조물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의 둥지를 보면 어떤 예측가능한 형태로 발전할 지에 대해서 판단하기란 쉽지가 않다. 구조를 만드는 방법은 같으나 만들어지는 결과물이 다른 것은 아마도 둥지를 만드는 새가 각각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은 과학의 범주에서 새의 행동양식을 모방한다. 그림에는 이러한 새의 행동행동양식을 모방하여 구를 이루는 구조체를 형성한 것이다. 전통방식으로 만든 스펙타크로 공을 꼭 닮았다.
자연속에서 나타나는 형태를 이해하고 모방하는 것이 어쩌면 예측할 수 없는 어떤 위험에 대한 직관을 키우는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그래서 또다시 예측할 수 없는 무엇에 대한 예측시스템을 만들고 또 그렇게 모두가 공유하게 된다. 인류가 저지르는 많은 일들은 모두가 참여해서가 아니라 소수에 의해서 진행되는 일에 많은 이가 묵인하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사회가 혼란할 수록 전문가가 아닌 여론(?)이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예측 가능한 시스템은 존재의 가치가 없어지고 매몰 될 수 있다.
사람도 구조도 그리고 스펙타크로 경기의 격렬한 움직임도 관찰을 통해서 예측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