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모든 일은 산으로 간다.
무엇인가를 결정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결정할 사안에 대한 충분한 정보이다. 어떤 일이든지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가 정보를 공시하고 당사자의 의견을 묻는 절차를 소홀히 하고 있다. 한 술 더 떠서 정보를 숨기고 결정사안과는 무관한 정보를 들이 밀기도 한다. 전문가가 아니면 구분할 수 없는 교묘함이 숨어 있어 전문가를 의사결정라인에서 제외하기 까지 한다. 왜 이런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깊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알수가 있다. 정당하지 못한 의도를 가진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할 이유가 없다.
오랜시간 만들어진 전문가의 위상을 하루아침에 허물어 버리고 전문가의 의견을 가볍게 여기기 시작하면 우리 모두가 힘들게 쌓아온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리는 것도 시간문제이다. 다만 아직도 곳곳에서 힘들게 그 힘든 짐을 지고 버티는 보석같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무너짐을 지연시키고 있다.
A는 10년 전에 있었던 일을 너무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공공기관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절차를 진행하는데 있어 회의가 시작되기 몇시간 전에 회의장소를 바꾸고 몰래 위원들에게 문자를 보낸다. 반대하는 시민들을 속이고 의도한 의사결정을 진행하기 위해서 변경된 회의장소에 위원들을 불러모으고 그 뜻을 관철시키려는 속셈을 드러냈다. A는 그 이후로 이 공공기관에 발을 들여놓지 않고 있다. A가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세상은 여전히 동일선상에 있다.
A는 많은 사람들이 전문적인 일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전공과는 무관한 일을 의결하고 또 관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둘러보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두가지 선택을 한다. 1. 이런 문제를 바꾸어 보려고 사회운동에 뛰어든다. 2. 자신의 본업에 더 깊이 빠져든다. 정말 큰 문제는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 그 수 자체가 적다는 것이다. 병이 사람의 약한 곳을 파고 드는 것처럼 우리사회의 허술한 면을 문제의식 없이 파고 드는 다수는 어떤 존재로 인식해야 하는 것일까? 엄밀하게 보면 우리몸에 파고드는 병과 같고 그래서 치료법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법을 만들어 간다.
법을 만든 것과 법을 제대로 집행하는 것은 천지차이이다. 아무리 좋은 법을 만들어도 오용되거나 남용되거나 차별적으로 적용되면 법의 의미를 상실한다. 이때 중요한 것이 투명성이다. 과정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어쩌면 법 집행의 투명성이다. 개인의 정보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최근 개인의 정보와는 전혀 다른 정보들이 개인정보로 둔갑하고 또 강제로 보호되고 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A는 요즈음 영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정치적 사례에서 매우 큰 실망을 하고 있던 차였다. 과거 25년전에는 영국이라는 사회가 적정한 투명성을 가지고 사회가 운영되고 있었다. 이러한 투명성은 모든 구성원들에게 적은 피로감을 주고 또 바른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투명성이 사라지고 정보가 감시되고 감추어지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많이 퇴보한 나라가 되었다. 정치인은 자신이 국민들에게 하였던 말을 자신이 지키지 못한 일이 생겨도 사과하지 않는다. 도덕성이 땅으로 떨어진 것이다. 권력자는 자신의 측근이 도덕성을 상실해도 해임은 커녕 중용한다. 권력을 휘두르면서 늘 자신은 권력의 피해자임을 자청한다.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한편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책임질 수 없는 너무나 많은 주장과 의사가 난무하고 있고 심지어는 정치인들이 이러한 주장을 쏟아내고 있다. 이러한 사회는 투명성과는 거리가 멀다. 가짜 뉴스를 만들어내고 진짜뉴스는 가짜로 이야기 한다. 정보를 쏟아낼 수 있어서 자유로운 사회가 아니라 정제되지 않은 정보가 오히려 투명성을 가려버리게 된다. 일부는 교묘하게 투명성을 흐리기 위해서 관련없는 정보를 쏟아내기도 한다. 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일까?
의도를 가지고 투명성을 해치는 세력에 대한 단죄가 없다. A는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이 옳고 그른지에 있는 것이 아니고 피아를 구분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단지 피아의 구분에서 시작되는 극히 단순한 메카니즘을 가진다면 투명성 밖에는 답이 없다. 우리사회가 어떤 중요한 결정에 임하게 될 때 반드시 정보가 공시되어야 하고 충분히 당사자들의 의사를 수렴해야 하고 충분한 기간을 통해서 그 결과가 공시되어 이견이 없는지 물어보아야 한다. 그리고 불법적인 또는 불손한 의도가 밝혀진다면 그 결정을 취소할 수 있는 투명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래야지 이 사회에 병처럼 다가오는 그들이 발뻗고 잠자지 못하는 세상이 올 수 있다. 투명성만이 우리사회를 살릴 수 있다.
A에게 “그 말이 매우 합리적이지만 옳지 않다”는 이야기를 해준 어떤이는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우리사회에는 옳고 그름을 단지 피아를 구분하여 결정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세상을 옳고 그름으로 구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합리적이지 않고 세상을 자기 중심적으로 보는 경우가 매우 많다. 단 법과 규정을 어기고 속이는 사람들은 논외의 대상임을 말하고 싶다. 우리사회가 정한 최소한의 요건(minimum requirements)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선량한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일도 아니면서 사익을 위해서 거창한 말들을 쏟아내는 사람들은 논의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위의 그림은 최소면적을 가지는 면을 내력밀도법(force density method)을 이용하여 구한 결과이다. 등가의 응력이 존재하는 공간을 면으로 표현하다보면 우리사회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금방에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