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etic Facade Buil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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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로가 정해져 있는 기차를 이용하면 빠르고 정확하지만 이동 중에 승객에게는 자유가 없다. 자동차를 이용하면 도로사정에 따라서 변수가 생길 여지가 있으나 자유가 주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지속가능한 건축으로 무작정 달리던 때가 있었다. 어떤 방식으로 지속가능한 건축에 도달하려고 하는 것일까? 어떤이는 지속가능한 건축이 하나의 목적일 수 있지만 어떤이에게는 수단일 뿐이다. 왜 사람들은 지속가능한 건축을 향해 달리고 또 환호하는 것일까? 그 이유가 무엇일까? 무작정 목적지를 정하고 철로를 설치하고 임시기차를 운행한 것은 아닐까?

최근에 기반연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공학은 응용학문이라고 주장하는 실용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기반연구를 소홀히 대한다. 사실 공학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과학이 발전하고 또 걸맞는 기반학문도 다져져 왔다. 그런데 왜 기반연구를 소홀히 대하는 풍조가 생긴것일까? 이러한 현상은 다른 관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 이유에 일반화의 오류가 발생하지 말았으면 한다.

청운의 꿈을 않고 유학을 간다. 경제적 문제에 봉착을 하게 되고 따라서 재빨리 꿈을 포기하고 펀딩이 가능한 쪽으로 분야를 바꾸게 된다. 귀국을 한 뒤에 더 이상의 기반연구는 하지 않는다. 그런데 본인이 꿈꾸었던 분야에 대해서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며 전문가 행세를 한다. 한가지 예를 들면 구조해석을 한다고 하면서 기반연구를 전혀하지 않는다. 자동차를 만들수는 없으나 자동차를 누구보다도 잘 운전할 수 있다고 떠 벌린다. 구조해석을 하면서 단 한줄의 코딩도 없이 상용프로그램의 기본기능에만 충실하게 의존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필요한 상용프로그램을 찾아서 다닌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늘 자신은 전문가라는 이야기를 빠뜨리지 않는다. 어떤 분야가 이런 상태에 놓이면 그 분야는 선진국과 격차가 점점 벌어지게 된다. 그들이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많은 돈을 주고 구입하고 또 이용하는데 실은 그들이 만든 소프트웨어를 테스트해주는 사람(?)들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기반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실을 말하면 최소한 기반연구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데도 지속적으로 전문가 행세를 한다. 진정으로 기반연구를 하는 사람들에게 혜택이 가야 한다.

이런 악순환은 고급인력을 키울수 없는 시스템으로 고착화되고 그 시스템을 통해서 배출된 인력은 지속해서 상용프로그램의 기본기능에 의존하게 된다. 교육시스템이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되는데도 교육시스템을 개선하려고 하지 않는다. 더욱 심각한 것은 대학교육의 커리큘럼에 소프트웨어의 기능만을 배워주는 기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대학에 학문의 범주가 아닌 기능의 범주가 교육시스템에 침입한 것이다.

지속가능한 건축을 하기 위해서는 지속가능한 방법이 도입되어야 한다. 물론 목적지에 도달해야만 한다. 그러나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 더 중요하다. 사람이든 조직이든 과정이 없는 시스템은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린다. 과정의 공정함이 없이는 결과는 정의로울 수가 없다. 따라서 정상적인 시스템을 위해서 반드시 과정의 공정함이 있어야 한다.

그림은 햇빛의 양을 조정하기 위한 기계장치의 요소기술을 빌딩에 적용한 것이다. 요소기술을 전체 빌딩에 적용하는 것은 해결해야할 새로운 문제를 발생시키는 또 다른 시작이다. 아이디어가 현실화되고 제품화되는데 있어서 필요한 것은 하나 하나의 결과가 공정한 과정을 통해서 도출되는 시스템이다.

균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그리고 정의로운 결과는 말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시스템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모든구성원들이 함께 할 때만 가능하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나라든 누이좋고 매부좋다는 비상식이 상식이 되는 미증유의 시대가 시스템에 어떤 불행을 초래할지 미래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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