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중성과 양면성
인간이 수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할 무렵부터 그들의 삶에 또 그렇게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인간은 자신의 머리로 가늠할 수 있는 수보다 크면 그냥 “많다”라는 표현만 사용했다고 한다.
초기에는 “하나, 둘, 셋, 넷, 많다” 이런방식으로 수를 인식했다고 한다. 그러다 열 손가락의 범위를 넘고 또 그렇게 셀수 없는 수를 다루고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없다, 적다, 많다” 라는 셈법을 이용하며 살고 있다.
구조물이 가지는 고유진동수는 이론적으로 무한한다. 물론 진동하는 모습은 눈으로 볼 수가 없다.
보이지 않는 물리적 현상에 대한 이해는 역시 수학과 과학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단적으로 말하면 우리 주위의 모든 구조물은 떨고 있는데 우리는 수학과 과학을 통해서 현상의 원인을 규명한다.
바람과 지진과 같은 강력한 외력이 구조물의 고유한 진동현상을 증폭시킨다. 그리고 때로 구조물을 붕괴시킨다.
사람은 어떠한가? 모든 사람은 인격이라는 다소 모호한 형태의 진동수를 가진다.
인간의 다중성은 내재된 무수한 인격의 합성으로 나타나며 한편으로 사람은 지배적인 인격으로 정의된다. 앞서 말한 적다 많다 라는 수의 관념으로 인격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때 인간의 양면성은 한 인간에게 내재된 인격의 대결구도에서 살아남은 비슷한 크기로 존재하는 서로 상반된 인격이 공존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게 된다.
수십년간 바위처럼 한자리를 같은 방식으로 지키고 있다보면 다양한 인격을 마주하게 된다. 물론 아직 인격이라고 불리기도 민망한 번잡함들이 머물기도 한다. 가끔씩은 꽃잎향기 같은 인격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일들이 있기는 하지만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그저 악취를 풍기는 인격도 많다.
무한대를 알게된 수(數)의 시대에도 자신만의 인격을 갖추고 향기를 내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사람이 그리운 시절이 되었다. 그리고 아주 드문 시절이 되었다.
PS, 인간을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며, 인간이 무너지는 현상도 자신이 만들어온 인격과 자신이 선택한 환경에서 나타나는 공진에 비유할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