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한 분야의 큰 그릇이 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을 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담론이 항상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밥을 담는 그릇이 되고 싶고, 어떤 사람을 술을 담는 그릇이 되고 싶다. 또 어떤이는 그냥 비움을 담고 있기를 원할 지도 모른다.
사람의 가치관이 만들어 내는 담고 싶은 대상이 실은 담지 말아야 할 대상이 만들어 가는 가치관일 수도 있다. 그래서 왜곡된 가치관이 사회에 미칠 파장을 생각하면 아찔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열심히 일은 하는데 무엇을 위해서 하는지 잊어 버린채, 그렇게 없어져야할 무엇인가를 연명하게 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분명 내 자신을 되돌아 볼텐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처구니 없지만 내가 담고 싶은 무엇인가를 위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머리를 잠시 스친다.
구조물의 형태가 가지는 의미는 제일 먼저 아름다움에 있어야 한다. 정형화된 구조형태를 매번 이용하면서도 평온한 일상을 사는 구조쟁이는 한번 쯤 내가 왜 이런 수렁에 빠졌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무엇을 담고 싶은지 곰곰히 생각하다보면 무엇인가 변화가 찾아 올 수도 있다. 깨어있지 못하고 무엇을 담을지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모두가 그렇게 또 수렁에 빠지게 된다.
미니멀리즘이 건축을 휩쓸 던 그때 직선이 주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사람마다 미에 대한 기준이 다르고 또 선호도가 다르지만 여전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어떤 기준은 늘 존재하고 있고 또 존재해야 한다. 그림에 있는 직선과 형태의 반복 그리고 대칭이 주는 구조의 아름다움은 혹시 보편적 형태가 주는 익숙함은 아닐까.
담고 싶은 대상과 그로 인해서 생기는 가치관이 실은 내 가치관이 담고 싶은 대상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회의 기초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 구성원이 전혀 다른 쓰임의 그릇을 만들기도 한다.
밥을 담고 싶은 그릇은 술을 만드는 사회에서는 큰 그릇이 되기 어렵다. 생각을 바꾸어서 술을 담기로 하면 모를까. 하지만 사람의 가치관이 그리 쉽게 변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