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어린시절부터 일본에 대한 감정이 늘 좋지 않았다. 직간접적인 교육의 힘이 아닌가 한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나라에 대한 막연한 불신이 깊게 깔린 삶은 그렇게 그 나라를 멀리하게 했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집안 사람들이 일본에 공부하러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일본사람을 처음 만난 것은 유학생활을 시작하면서 였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시작한 유학생활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이때 기숙사의 맞은 편 방에 동급생인 일본인이 있었다. 그리고 일본인 교수들에게 수업을 듣게 되었다. 막연한 불신은 이 시기에도 풀리지 않았다. 아마도 그들도 A가 가지고 있는 어떤 느낌을 알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2년간의 유학생활동안 서로 왕래도하고 수영도 같이 다니고 했다. 그리고 일본인들에 대한 생각이 다소는 좋아졌다.
조금 더 나이를 먹고 20대 후반이 될 무렵 시작된 또 다른 유학생활에서 생면부지의 대학원 선배가 영국을 방문하게 된다. 같은 연구실 출신의 선배이지만 한번도 만난적이 없는 일본인 선배였다. 집으로 초대를 하고 여러가지 음식을 준비해서 저녁을 같이 했다. 그렇게 격식을 갖추어서 일본사람을 집으로 초대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이렇게 많은 일본 음식을 준비했느냐는 선배의 말은 뜻밖이었다. 준비한 다양한 튀김을 보고 일본음식이라고 하였다. 다른 한국음식도 많은데 선배는 유독 “덴뿌라”에 감동했다. 그리고 또 잡채를 좋아했다. 그래 “한국사람이 먹으면 한국음식, 일본 사람이 먹으면 일본 음식이 될수도 있지뭐”라는 생각으로 우리는 낯선 이국 땅에서 그렇게 서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생활을 하면서 세번째 기회가 생겼다. 연구소에 일본인 연구원이 방문을 하기 시작했다. 일본사람들이 다 그런지는 몰라도 이 양반은 백제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함께 공주를 방문하기도 했다. 내가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부분에 일본인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만난 일본인들과는 달리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하던 그도 여러번의 방문을 거듭하면서 본인의 자료와 소주를 바꾸어 가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가방에 소주를 넣을 수 없어서 자료를 전부 주어버리고 소주를 가득 채워서 가져간 것이다. 매우 자유분방한 일본인을 만난 것이다.
A가 일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일본을 직접 방문하게 되면서 이다. 2주간 동경대학을 방문할 일이 생겼다. 유학시절 사제의 연을 맺은 prof. M의 배려로 대학내에 있는 산상회관에 머물수 있었고 그렇게 생애 첫 일본에서의 짧은 생활이 시작되었다. 일본은 한국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사람도 건물도 그리고 풍경도 내가 지금까지 보아 왔던 나라와 비교하면 너무도 닮아 있었다. 좋은 음식과 좋은 장소 그리고 시간을 내어서 진심으로 대해주는 일본인들에게서 A는 스스로 가지고 있던 생각이 어쩌면 편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기 시작 했다. 많은 도움을 받았고 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2주를 일본에서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일본을 방문했을 때는 어느 시골에 있는 마을이었다. 휴가겸(?) 방문한 일본의 시골풍경은 한국의 그것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놀랍기도 하고 무엇인가를 공유하고 있는 나라라는 인상을 매우 강하게 받았다.
구조물 답사를 하기 위해 다시 일본을 방문했을 때는 이미 이 나라에 많이 익숙해져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정도 였다. 그리고 그 뒤에도 여러번 일본을 방문하게 된다. 일본의 고치현에 있는 시장에 가면 시장의 중앙에 죽 늘어선 기둥이 있다. 기둥 위에는 막이 감겨져 있는 것 처럼 보이는데 이게 비가 오면 우산이 되고 햇볕이 많은 날이면 양산이 된다. 접혀 있기도 하지만 필요하면 접었던 것을 펴게 된다.
그림에 있는 장치와 매우 유사하다. 바에 막을 달면 우산처럼 펴지기도 하고 접히기도 한다. 전개구조라고도 하는 이 장치는 실생활에서는 우산으로 연상할 수 있다. 전개구조를 모사하면서 오래전에 아주 작은 도시의 시장속에서 우연히 만났던 전개구조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