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재료모델에 대한 연구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기 전 마지막 여름,  A는 영구귀국을 하였다. 보스의 요구로 인해서 6개월이라는 다소 긴 프로젝트 인수인계 기간을 가졌고 조금은 지친상태였다. 평온하던 영국과는 달리 IMF중이던 한국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지금도 인상적인 것이 연구원 본관 출입구에 텐트가 설치되어 있었고 노조원들이 그 텐트를 이용하고 있었다. 귀국했다는 사실을 실감하였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당시 A의 젊음이란 “미숙과 무모”의 두단어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에 귀국하여 처음 시작한 연구가 프리스트레스 콘크리트 격납건물비탄성해석이었다. 쉘구조라는 연관성때문에 지원한 자리였다. 연구원에서 그때까지 진행되어온 연구내용을 빠르게 팔로우업(follow-up)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연구의 진행상황은 그리 좋아보이지 않았다. 구식 오픈소스를 이용하여 격납건물을 해석하는 코드를 개발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며 프리프로세서(pre-processor)와 포스트프로세서(post-processor)는 외주를 주려고 하였다. 문제는 오픈소스가 너무 구식이었고 외주를 주면서 조악한 소프트웨어를 보유할 필요가 없어보였다. 장기적인 연구계획과 함께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이 필요했고 최신의 오픈소스를 이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제일 큰 문제는 콘크리트라는 재료의 불확실성을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재료모델이 없었다. 고민이 깊어가는 즈음에 동경대학교에 계신 Prof. M 생각이 났다. 그리고 Lab장의 소개로 찾아뵙게 된 성균관대학교의 Prof. S가 Prof. M의  랩에서 학위를 하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 재료모델에 대한 고견을 구하기 위해서 두분을 만나기 시작했다. 참 다행인 것은 두 분다 콘크리트해석 코드를 개발해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콘크리트랩을 운영하고 있었다. 여러번의 만남 끝에 Prof. S는 Dr. C의 박사학위 논문과 관련 코드를 주시면서 연구가 잘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덕담을 해주셨다. 그리고 Prof. M은 동경대학교를 2주간 방문하는 동안 깊은 환대와 함께 콘크리트 재료모델과 관련실험에 대한 자료를 한아름 챙겨주셨다.

일본에서 가져온 관련자료를 읽고, Dr. C가 작업한 코드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기존의 콘크리트 해석코드에서 재료모델 부분만 따로 정리한 뒤에 개발하려고 하는 격납건물해석 코드에 삽입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Prof. S의 랩에서는 이미 구식 코드를 버리고 재료모델을 새로운 코드에 삽입하여 이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두 가지의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였다. 새로운 쉘 유한요소를 도입하고 재료모델을 완전히 분리하여 개발하는 코드에 삽입하는 것이었다. 이때 A는 재료모델 부분을 소스레벨에서 다루지 않고 라이브래리를 만들어서 이용하였다. 개발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이후에도 A는 스스로 재료모델에 대한 코드를 배포한 적은 없다.

스완지에서는 소성학에 기반한 콘크리트구조물의 해석이 주로 이루어졌다. 소성학을 기반으로 하는 재료모델(이하 소성모델)은 해석이론을 공부한 사람들이 선호한다. 그러나 이 모델은 콘크리트의 물리적 현상을 세세하게 다룰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반면 실험데이터를 기반으로 다양한 세부재료모델을 개발해온 동경대학교의 재료모델(이하 동경모델)은 대부분의 구조물에 탁월한 해석결과를 보여주었다.

물리적현상을 이해하고 이를 수학적 모델로 표현하는 일들이 반드시 한가지의 방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한편으로 소성모델을 격납건물에 도입하는 방식을 함께 추진하였다. 스완지는 80년대에서 90년대 초반까지 콘크리트해석과 관련된 연구가 심도있게 수행되었다. A는 이 연구결과를 격납건물해석에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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